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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와 꽃나무 / 차영섭 ( 한국문학신문---2006.2.1)
대나무 죽순은 봄철에 자기 키가 다 자란다.고속 행진으로 자라는 게 아니라 가다 멈추다 가다 멈추다 하면서 자란다.이게 성장의 원리다.마디를 맺지 않고 자란다면 약한 바람에도 쉬 부러질 것이다.또한 죽순은 자라면서 속을 모두 비운다.속을 비우고 몸무게가 가벼워야 푸른 열차를 타고 멀리 갈 수 있기 때문일까.
이것은 마치 소나무가 위로 자라면서 아래로는 스스로의 가지를 썩혀 떨어트리는 자체 감량 작업과 일치한다.추울수록 소나무가 푸르른 것도 속을 비운 까닭이 아닐까 싶다. 대나무가 마디를 맺고 속을 비우며 성장하면서 뿌리는 뿌리대로 서로 얽히고 설켜 단단히 결속한다.결속함으로 나 하나의 힘이 백이 되고,작은 힘으로도 큰 힘을 발휘한다.그래서 대나무는 아무리 큰 바람에도 뿌리가 뽑히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꽃나무에게도 우주 원리에 영합한 신비로움이 있다.꽃나무는 저마다 때가 되면 수력 발전소처럼 푸른 피를 돌리면서 속으로부터 피어오르는 꽃망울에 마치 어머니가 해산하는 것처럼 자기의 온갖 기력을 집중시킨다.똑 같은 피의 줄기에서 만들어졌는데도 꽃잎의 모양이나 꽃색깔,그 향기가 각각 다른 것을 보면 갓 태어난 아기의 모습과 흡사하지 아니한가.
신의 손이 아니고서는 탄생될 수 없는 신비스러움에 감탄한다. 꽃나무는 이렇게 온 힘을 다하여 신비를 탄생시키고 나면 기력이 쇠하여 기진맥진해 진다.맺은 열매를 튼실하게 키우기에는 기력이 부족하다.
이때 하늘에서는 구름이 모이고,구름들은 몸부림을 치면서까지 천둥 소리를 토해내고 번갯불을 지상으로 날려,쓰러질 듯 말 듯한 꽃나무들에게 장대비를 쏟아부으며 원기를 회복시켜 준다.자연의 도(道)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힘을 얻은 꽃나무는 새로운 도약을 시작하게 되고 가을이 되면 자기 몸의 일부인 이파리까지도 시들게 하면서 좀더 많은 힘을 열매에게 실어 주고 새 봄에 영생을 기약하는 것이다.
이처럼 대나무의 삶에서 보았듯이 때에 맞게 실오리 훔치듯, 비 온 뒤에 흙을 다지듯, 한 단계 한 단계 마디를 맺고,대나무 밭의 모든 뿌리도 하나로 뭉쳐서, 아무리 강한 바람에도 모두가 사는 큰 지혜를 지니고 있다.역사의 발전이나 한 민족의 번영도 이와 같으리라.
언뜻 보기에 꽃도 그냥 피는 것 같지만 한 송이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익히기 위하여 꽃나무가 봄부터 가을까지 성심 성의껏 보살핀다는 생각을 하니 어머니가 자식을 키우는 사랑을 보는 것 같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고 볼 수 있다.사람이 살아가면서 자기 나무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튼실히 맺을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된다.
이렇게 정성을 다하여 나를 가꿔서, 그것을 사랑으로 보답하는 대나무와 꽃나무의 정신으로 이 사회가 더욱 뭉치고 서로를 도우면서 아름다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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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현일장(三顯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