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性이란 꽃
글 차영섭
동물이던 식물이던 사람이던 다 하늘로부터 주어진 성질이 있다. 그 중에서 사람에게 주어진 성질을 인성이라 한다. 인성은 곧 천성이다. 하늘의 마음을 사람의 마음 속에 갔다 놓은 것이다. 하늘처럼 곱게 살라는 하늘의 이치다. 인성 대로 산다면 오죽이야 좋을까 마는 사람이 태어나 자라면서 무엇을 알게 되면서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욕심이 생기게 된다. 마음을 까맣게 물들려 인성이 무의식 속에 감춰지게 된다. 강물에 돌멩이가 가라앉듯이 인성이 보이지 아니하고 욕심이 세상을 더럽힌다. 이러한 인성을 물 밖으로 드러나게 하여 아름답고 선한 세상을 살게 하기 위하여 인성 대로 살기를 희망하고 있다.
사람은 흙에서 왔으므로 나무나 풀처럼 흙에서 살아야 자연의 본성을 되찾게 된다. 도시에서의 삶은 이러한 자연성을 상실하게 한다. 상실된 자연성을 말로 교육하여 회복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가급적이면 어린 시절부터 자연에서 놀며 자연과 더불어 친해짐으로 자연을 알게 되고 나도 몰래 자연을 닮게 되는 체험에 의한 학습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험으로 보면 나는 이 말을 확신한다. 나는 최소한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거의 공부해 본 기억이 없고 아침 일찍 친구들과 자연으로 나가면 밤 자정에서야 돌아오곤 했다. 4학년 때 99단을 몰랐으니 내 논 아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님이 얼마나 속 썩었을까? 그러다가 5학년이 되어서야 중학교 입학 시험 준비를 했는데, 5학년 것은 알아도 기초가 없어 3, 4학년 건 몰라 애를 먹었다. 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중학교를 들어가고, 중학교에서도 축구선수 생활을 하면서 짬짬이 공부를 했고 그 후로는 공부에 대한 맛을 느꼈다. 내가 여기서 얻은 교훈은 공부는 본인이 느껴서 하고 싶은 때가 와야지 아무 때나 하는 게 아니란 것을 알았고, 내 인생 전반에 걸쳐 나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어릴 적 자연에서 뒹굴며 놀던 때였다고 말하리라.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는 말이 꼭 맞는 것 같다. 어릴 적 인성이 아흔 가리라. 인성을 물에 비유하면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이요, 공기로 말하면 산 속 소나무 아래 솔향 그윽한 오존 같은 것이고, 가을 달밤에 귀뚜라미 소리, 여름 뙤약볕에서 우는 매미 그런 거 아닐까 싶다.
가냘픈 들꽃을 보면서, 가뭄에 메마른 풀잎을 보면서, 폭풍에 시달리는 나뭇잎을 보면서, 추운 겨울에 견뎌내는 나무를 보면서 불쌍히 여기고 참고 인내하며 숲처럼 서로 양보하고 존중하며 순리에 따라 예를 지키는 남 모를 질서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이것이 어린이를 흙과 친하게 하여 얻는 선물이 된다.
여기서 잠깐 위즈워스의 <서곡> 일부를 짚어보고 계속하겠다.
오랫동안 수척했던 불만스러운 체류자가
거대한 도시 벗어났으니, 이제는 자유로이,
새처럼 자유로이 원하는 곳에 정착하리.
[……]
저 부자연스럽던 내 자아의 짐,
내 것 아니고, 나완 아무 상관없던
숱한 지친 날들의 중압감 사라지도다.
길고 긴 평화로운 날들 (그런 대담한 언어가
인생의 어떤 약속들과 일치할 수 있다면),
편안하고 방해 받지 않는 기쁨의 긴 세월이
내 앞에 펼쳐지리. 난 이제 어디로 갈까,
큰길이나 오솔길로, 혹은 길 없는 들판 헤치며?
언덕 또는 골짜기, 혹은 강물에 둥둥 떠다니는
무엇인가가 내 여정을 안내해줄까?
도시 생활은 권태를 불러 일으킨다. 이러한 권태는 자연과 친함으로써 소멸하게 하는 힘이 생기지, 도시의 삶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대지의 자식 아닌가? 그래서 대지의 삶 방식을 따라야 한다. 대지의 생명은 일정한 리듬을 타고 흐른다. 봄 여름 가을에는 힘차게 설치고 겨울에는 복지부동하며 심판 받고 반성한다. 그러면서 휴식 기간을 갖는다. 달이나 바닷물처럼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찬다. 나뭇잎이 단풍 들어 떨어지면 슬프고 봄에 새싹이 돋아나면 희망 찬다. 자연이 슬프면 함께 슬퍼하고, 자연이 웃으면 함께 웃을 수 있는 감성이 얼마나 감미로운가! 이러한 자연의 품성을 받아들여 무의식 속에 감춰진 나의 인성을 드러내고, 서로가 서로에게 인성을 베푼다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행복해질까!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인성은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생명을 존중하는 하늘의 마음이다.
사람의 생명뿐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이나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헛되이 하지 않는 마음이다. 자연에서 생명들의 삶을 방해 하지 않는 조용한 삶이다.
산에 가도 조용히, 물에 가도 조용히, 우리 모두 소음을 주지 않고 나름 나름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
자연의 소리는 우리의 마음을 닦아주는 속삭임이 있다. 고스란히 마음의 평화를 얻어 보자. 도토리 떨어지고 다람쥐가 물고 가는 흥겨운 소리며, 달이 물 속에다 수 억의 달 알을 낳는 소리,
봄에 고요 속에서 새 싹 돋아나고 가을에 낙엽 구르는 소리,
강물에 이르기 위해 개울물들이 소근거리는 소리,
봉 봉 봉....흙이 가슴을 여는 소리, 산 계곡물 휘돌아 가는 소리,
봄 밤 달빛 아래 개구리 울음 소리, 숲 속에서 숨바꼭질 하는 산바람 소리,
산새 물새들의 여유로운 소리, 여름 낮 매미들의 다급한 소리, 가을 밤 풀벌레 슬픈 소리를 가슴 열고 들어 보자.
인성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몸소 체득하며 가물어 메마른 흙에 빗물 스미듯이 딱딱한 것을 무르게 풀어 주는 것이다. 자연으로 나가자. 나가서 자연의 소리를 듣자. 들으며 굳은 마음을 풀어주자.그래서 내 마음밭에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벌 나비 찾아 들게 하자.
자연의 소리
왜 소리가 나는지 난 모르겠어
바람이 산을 넘어갈 땐 조용하다가도
구멍을 통할 땐 소리를 내고
물이 고요히 흐르다가도
떨어질 때는 소리를 내고
구름이 가만히 흐르다가도
부딪히면 천둥을 치고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빙판이 햇살에 못 견뎌 갈라질 때
파도는 갖고 있는 그 힘을 잃을 때 소리를 내고
새 소리며 귀뚜라미 울음 소리는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리라는 건 평형이 깨질 때 생기는 균열인가
꽃이 필 때는 왜 소리가 안 나는가.
소리에도 희로애락이 있고
마음이 있는 것 같아.
사람 소리는 무겁고 가볍고 아름답고
까슬하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하고....
그러나 자연의 소리는 언제나 맑아서 좋아.
소리로 그 마음을 다 드러낼 순 없지만
아름다운 소리는 아름다운 마음이란 건 알겠어.
남자와 여자의 차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