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여행한다
글 차영섭
나는 여행을 잘 몰랐다. 그런데 여행에 대하여 곰곰 생각해 보니 참으로 멋있는 여행을 하며 살아왔다. 그것을 여기에 정리해 보고자 한다.
나는 여행을 생활화 한다.
때와 장소가 없는 나의 여행, 생각나면 떠난다.
지도를 펴놓고 대강 위치만 정한 다음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특정한 날짜를 잡아놓고 하기보다 갑자기 나가고 싶을 때 뜬금없이 나가는 경우가 잦다. 나가고 싶다는 것은 여행지에서 누가 나를 불러 내가 응한다는 의미이니까.
비행기를 타고 바다 건너 멀리 가는 여행보다는, 차를 운전하고 드라이브하는 여행보다는, 나는 버스를 타고 다니는 여행을 즐긴다.
그것은 나를 여러 가지 구속으로부터 자유에로의 해방감 때문이리라.
버스를 타고 다니면 육체적으로 가볍고 정신적으로 압박감이 없으며 경제적으로
싸게 다니니, 여러 번 다닐 수 있다. 일단 점심을 싸가지고 다니며, 상황에 따라서
사먹기도 한다. 일정한 규칙이 없다. 바람 부는 대로 물 흘러가는 대로 여행한다.
최대의 자유를 만끽한다.
여행지엔 내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
들꽃들의 수줍음, 풀잎에 이슬, 가을벌레들의 겨우살이 모습, 계곡물들이 소곤거리는 사랑의 소리,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노래와 그림을 지닌 친구들과의 만남이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인공물보다는 자연물을 더 좋아한다.
이들과 대화를 해본다.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소리를 감지해 본다. 바위를 쓰다듬어 보고 나무를 어루만져도 보며 마음에서 마음으로 오가는 정을 따습게 느껴본다.
가본 곳을 자꾸 가는 것, 알고 있는 것을 또 보는 것은 나를 흥미롭지 못하게 만든다. 나는 안 가본 곳, 가보아도 코스가 다르게 하는 것, 몸으로만 하지 않고 마음까지 내가 그것이 되어 보는 신비로운 체험을 좋아한다. 어쩌면 그것을 맛보기 위하여 여행하는지도 모르겠다. 내 머리를 필름이라 생각하고 사물 하나하나를 내 기억 속에 저장해 둔다.
나는 상상 여행을 즐긴다.
집에 있을 때는 몸은 집에 두고 마음만으로 여행한다. 머릿속에 저장했던 것들을 꺼내며 신비로웠던 노래와 그림을 펼쳐 아름다운 추억을 즐긴다. 마음만의 여행은 몸이 할 수 없는 우주 공간으로의 여행이라든지, 물속으로의 잠수라든지, 바위 속으로의 침투라든지, 새처럼 날아본다든지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어 편리하다. 명상과 상상을 겸비한 여행은 때로는 몸으로 가보는 여행보다 더 심신을 건강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상상력은 무한한 우주의 기를 받아들이고 창조력을 계발하게 한다.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방랑자가 된다.
정처 없이 떠나서 어느 한가한 시골 역에 닿으면 지방마다 여행안내 표지판이 잘 그려져 있다. 거기서 코스를 변경도 하고, 정류장에서 대기하며 시골 풍경도 만나 도 보고, 시골의 풍류를 구경도 하고, 할 수 있는 데까지 미지의 세계에다 나를 던져놓는다. 몸만 방랑자가 되는 게 아니라 생각도 방랑자가 되어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들 실컷 만나게 해준다. 여행은 새로운 세계를 맛보는 기회라 생각한다.
새로운 세계를 접하며 내가 새로워지게 해야 한다. 때로는 호젓이 혼자 하는 여행도 생각할 여유를 증가시켜 준다. 내 흘러간 과거를 오늘에 되살려 보면 아름다웠던 그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아름답고 즐거운 것을 자주 생각해 보는 것은 젊어질 수 있는 좋은 약이 된다.
여행은 삶의 도전을 경험하게 하고 흔적을 만나게 한다.
뒤로 걷는다든지 신체에 안 쓰던 부분을 써보고, 안 해보았던 것을 해본다든지,
부단히 몸과 마음을 움직이며 활발하게 사는 도전은 삶을 새롭게 만든다.
안정은 정체를 낳고, 정체는 후퇴를 낳고, 후퇴는 쇠태를 낳는다. 자꾸 뒤로 가지 말고 앞으로 가는 도전을 선택해야 한다. 여행은 삶을 활기차게 하는 도전의 기초다. 개방적이고 창조성을 가져오게 하는 동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여행 중에 만나는 모든 것은 자연이 남긴 생生과멸滅의 흔적들이다. 낙엽 하나에서,
돌멩이 하나에서 최선을 다하고 가는 삶의 흔적을 만난다.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만남이냐. 여행 중에 만나는 모든 것은 낭만이요 진실이다. 낭만을 즐기고 진실을 받아들이는 인생교훈을 알려주는 자연 학습장이니, 여행이야 말로 내 영혼을 씻어주는 세척제이다.
나는 여행기록을 남긴다.
보았던 모든 것, 생각했던 좋은 것, 들었던 소리들, 느꼈던 감미로운 것들을 오감을 통하여 수집해서 여행수필을 써 정리해 둔다. 때로는 인터넷에 올려서 여러 사람과 여행의 즐거움을 나눠본다. 글로 써보면 새로운 이미지를 가져볼 수 있고 다음에 다시 보면 추억을 쉽게 되돌려 볼 수 있어 좋다. 영화를 한 편 제작한다는 생각으로 정리한다. 줄기차게 상상하고 끊임없이 기록하여 좀 더 성실한 여행이 되도록 노력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여행을 한다는 것보다 여행이 나를 안내한다고 생각하고 나를 여행 그 자체에 위탁한다. 이런 기회를 통해서 되도록이면 사물을 평가하지 않고
내가 사물 그 자체가 되어본다. 꽃을 보면 꽃이 되어 보고, 절에 가면 스님이 되어 보고, 산에 가면 바위나 새가 되어 본다. 한 여름 숲에 부는 바람결에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내가 나뭇잎이 되어보면 그네를 탄 것처럼 한가로운 기분을 만난 적도 있었다.
볏논에 대한 추억을 더듬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