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과 상상을 즐기는 여행( 송광사)
글: 차영섭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2008년 9월 3일 광주 광역시 문화동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순천시 송광사에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버스에는 몇몇 시골 아낙네들과 학생들이 한산하게 앉아 있었고 나와 아내는 모처럼의
여행이었지만 어딘가 쓸쓸한 모습으로 제일 앞 좌석에 앉았다. 아침 9시 10분에 출발한 차였으니 차 안에서
본 풍경은 싱그럽기 그지 없으며, 시내를 벗어나 호남고속도로에 접어드니 먼 발치기 산에는 하얀 뭉게구름
이 산 아래로 내려와 무엇인가를 감싸 숨기고 그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주님께서 시내산에 구름기둥을 타고 내려오셨다는데, 장막에서 모세와 단 둘이 앉으셔 십계명을 검은 돌판에
새겨 주시고 다시 구름기둥을 타고 하늘에 오르셨다는데, 그런 상상을 즐거이 맛보지만 나는 시나이 반도 먼
사막에 홀로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버스는 경쾌하게 달리고 빗발치듯 날아가는 산에 산소들은 추석을 맞이
하려고 나름나름 말끔이 단장하고 있었다.
이곳 남도에 오니 유난히 배롱나무 꽃이 빨갛게 물들어 가로수에도 들녘 두렁에도 익어가는 벼의 수확 시기
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깊은 산 골짜기마다엔 마을이 조개처럼 뉘여 있고 앞 논 뒤 밭에는 곡식들이 풍요로운 삶을 보장해주 듯 평온한 기분을 느끼며 갔다. 나는 저런 마을을 볼 때마다 깊은 사색에 잠기곤
한다.
한처음에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들판인 옛 옛 오랜 옛날에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곳까지 와서 움막을
치고 살았을까. 몇 명인가가 괴나리봇짐을 등에 메고 남으로 남으로 내려오다가 눈이 머무는 곳에 짐을
풀고 나무를 베어 풀과 흙으로 집을 지어서 논을 일구고 살았을까. 자손이 번지니 옆에다 집을 짓고 뜻이
맞지 않던가 꿈이 큰 자손은 새로운 개척지로 떠나고 그래서 또 다른 마을이 생기며 서로 돕고 살았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버스는 어느덧 옥과에 도착했다. 아주 시골로만 알았던 이 동네에도 전남과학
대학이 설립되어 제법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옛 시절에는 서너 시간 걸리던 곳이 출발 20분만에
왔으니 도로 사정도 많이 발달했다.
평생 이곳을 지키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세월을 얼굴에 그리시고 빙그래 웃으시며 옛 할아버지 모습으로
타시고 버스는 가고 싶은 곳을 향하여 출발한다. 처음 버스를 탈 때에는 해가 떠 있는 동쪽을 피해 그늘지리라 생각했던 운전수 뒤에 앉았으나 구불구불 동서남북 방향을 뒤섞어가며 가는데는 당할 수 없어 햇볕은 따갑게
나를 비춘다.
녹음이 짙은 산, 나무들이 커서 산높이를 몇 미터나 높게 한 산을 보니 문득 어렸을 적 생각이 난다. 그땐 산이 벌겋게 피부를 드러내놓고 있어서 비가 오면 황토물이 개울에 금시 몰려들고 무섭게 흘러가는 황토 개울에서
미역을 감으면 피부에 털마다 황토꽃이 피었였다. 몰라서 그렇지 그 모습을 우리 엄마가 보셨더라면 난리가
났을 거다.
9시 57분, 또 다시 생각은 차를 석곡에 데려다 놓았다. 석곡에는 처음 왔지만 석곡이란 이름은 나와 깊은
인연이 있다. 내 외삼촌 작은댁이 석곡에 살으셨고 설움에 눈물을 밥에 말아 사셨던 가냘픈 여인의 일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살아난다.
지금도 살아 계시겠지. 얼마나 늙으셨을까. 아들이 하나 있었다는데 그 아들이 어머니를 잘 돌봐드릴까. 찾을
수만 있다면 차에서 내려 아무라도 붙잡고 물어 보고 싶어진다.
차는 518 광주사태 때 말썽 많던 주암호를 휘어감고 돌아돌아 송광사에 도착했다.
조계산 도립공원 안에 있는 송광사(松廣寺)는 순천시 관할이다. 순천에서 1시간 10분, 광주에서 1시간
30분 거리다.
입구에 당도하니 오래 산 느티나무가 즐비하게 서 있고 늦가을인지라 매미들이 우는 소리가 힘이 빠지고
가락이 맞지 않으며 왠지 가는 세월을 아는지 서글픔이 서려있다. 여름에 우는 매미는 우렁차고 숲이 떠내
려갈 듯 힘 있었는데
아, 세월은 모든 만물에게 공평한 평가를 내리는가 보다 싶다. 그렇듯 절에서 울려나오는 말씀인 즉, 차별
이란 없단다.
만물에 차이는 있지만 차별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란다. 자기가 차별을 만들어 내고 자기가 그 차별로
인하여 고통을 안고 산단다. 만물은 다 평등한데 마음은 다 불평등을 조장한단다.높낮이를 만들고, 간격을
나누고, 색갈을 달리하고, 넓이를 다르게, 크기를 다르게,무게를 다르게, 무엇이든지 다르게 하는 마음.
거기서 쾌감을 느낀단다.
나와 아내는 둘이 손을 잡고 걸어서 더 깊숙이 들어갔다. 개울물 소리가 뭔지 잠시 들어보고 가라해서
발을 멈춘 곳이 불교 책을 파는 간이 서점 앞, 참 가슴을 울리는 말씀이 개울물 말씀 그대로다. 그 하나를
소개 한다.
처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대숲 인
송광사는 신라 말 혜린 선사에 의해 창건 되었으며 창건 당시 이름은 송광산 길상사였다.
그 당시에는 작은 절이었으나 보조국사 지눌 스님께서 정혜결사를 이곳으로 옮기면서부터
한국 불교의 중심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한다.
불교에서는 세가지 보배인 불佛, 법法, 승僧 삼보가 있는데 이를 상징하는 삼보사찰이 있다.
즉,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가 그것이다. 송광사는 한국 불교의 승맥을 잇는
승보사찰이다. 보조국사를 포함한 16국사를 배출했고 1969년 조계총림이 되었다.
총림이란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 도량인 선원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과 계율 전문 기관인
율원을 모두 갖춘 사찰을 말한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1200년 꽂아 논 지팡이가 아직도 생생이 옛 모습을 가리키고 있다.
12시 정각에 12시를 알리기 위해 종을 열두번 치는데 그 소리의 울림이 대단했다.
쇳소리는 첫음 잠깐 이었고 종은 울림으로 산천곳곳에 말하고 있었다.
종을 치면 종 안에서 소리를 만들어 울림으로 세상에 전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웅~웅~ 말은 짧고 울림은 길었다.
사액된 왕실 기도처인 관음전을 돌아보고 성조박물관 안에 전시된 소라 피리의 엣 소리를
여운으로 남기며 아내와 나는 산채비빔밥으로 막걸리 두어잔을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에 다시 와서 천자암에 있는 쌍향수나무(천연기념물 )를 보고 조계산에 올라 그 전경을
보아야겠다.
나의 원시생활이 그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