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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원시생활이 그립다
글 차영섭
뒤를 돌아보며 곰곰 옛 생각을 해본다. 과연 살아온 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고
행복했던 시절은 언제였을까. 어렸을 적 추억은 그림처럼 떠오르는데, 사회 생활하던 기억은 낡은 영화 필름마냥 자주 끊어진다. 생각이 났던 부분도 바쁘게 일했던 것 외에는 별로 이야기할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새벽별 보고 출근해서 자정이 넘어서라도 퇴근하면 참 좋았고 기쁨이었다. 부대 야간 주번근무에다 야외훈련에다 모처럼 퇴근할 수 있는 날이면 웬일이 그리 많은지 부대가 내 집이었다.
요즘 어린아이들을 보면 안쓰럽다. 초등학생인데도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학원으로 가고 보통 서너 과목 강의를 듣는다니,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내가 어렸을 때는 공부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학교에선 주먹만 한 고무공으로 맨발 축구를 했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엔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종달새 알을 찾으러 다녔거나
보리 서리를 하여 손바닥이 누르스름하게 익고, 입가에 까만 거스름이 생기도록 해가 뉘엿뉘엿 할 때까지 놀았다. 여름에는 십리 길을 걸어서 냇가로 미역 감으러 다녔고, 가지를 꺾어 만든 고무줄 새총으로 참새를 잡으러 다녔으며, 노랗게 익은 살구를 새총으로 떨어뜨려서 주워 먹기도 했다. 가을에는 볏 짚단 사이에서 휘영청 달 밝은 밤에 술래잡기를 했으며, 동네 골목길을 돌며 사물놀이를 했다. 꽹과리를 치고, 장구나 북이나 징을 두드리며, 목돌리기를 하던 재미는 아직도 모닥불 연기처럼
솔솔 떠오른다. 겨울이면 논에서 하루(야구처럼 하는데 고무공을 사용함)를 했고,
자치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재기차기, 꼬막 따먹기 등을 했다. 눈이 내리면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벌리고, 대나무로 스케이트를 만들어 탔으며 철사줄로 미끄럼틀을 만들어 밀고 다녔다. 참나무를 시궁창에 넣어 물이 스며들게 무겁게 한 다음 팽이를 만들어서 팽이 싸움을 하면 어딜가나 왕초였다. 이렇게 놀다가 배가 고프면 부엌에 가서 솥단지를 열면 어머님이 해 논 밥이 있으니 그걸 먹고 다시 나가서 놀다 집에 오면 자정 쯤 되었다. 그때는 산에 나무가 없어서 풀도 없는 민둥산이었으니까 비가 오면 홍수가 벌겋게 냇가로 흘렀다. 한꺼번에 흘렀다 금새
물이 줄어든다. 물살이 쌘 냇가에서 헤엄을 치며 물놀이를 했으니 떠내려가면
위험한 일이었다. 부모님이 그걸 모르셔서 그렇지 걱정스러운 위험한 장난이었으리라. 공부는 안하지 밤늦도록 보이지도 않지 맨 날 놀기만 했으니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
그런데 말이어요. 공부도 때가 있는 모양이어요. 내가 5학년이 되어서야 공부를 했다 이거지 뭡니까. 누가 하라고 하지도 않는 공부를 한다고 방바닥에 엎드려
기름불을 켜놓고 밤늦도록 책을 보았으니, 누나 친구들이 네 동생 공부한다고 구경이라도 하는 것처럼 떠들었어요. 솔직히 말씀드려서요, 5학년 건 알겠는데 3,4학년 구구단을 몰라서 애를 먹었어요. 학교 운동회하면 달리기 선수였고 학교 축구 선수였으니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도 2년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중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했고 좋은 고등학교도 다녔지요. 내 평생 고등학교 때처럼 공부를 열심히 해 본 적이 없었으니, 하루에 잠을 서 너 시간 잤지요. 지금도 통하는 말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으나, 공부도 때가 있다는 겁니다.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는 공부를 해도 성과가 없을 거예요.
지난 삶을 되돌아보니, 어렸을 적에 원시인처럼 살았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이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때 못 놀았다면 얼마나 인생이 공허했을까, 하며 입가에 미소를 띠어봅니다. 메뚜기를 잡아 강아지풀에다 끼우고, 잠자리를 잡아서 손가락 사이에다 끼우고, 물고기를 잡아서 검정 고무신에다 담고, 무지개를 따러 뒷동산에 올랐으니 이 낭만 어디서 맛보겠습니까. 나는 행복했어요. 그런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실로 한 점 후회 없어요. 집중력만 있다면 늦게 해도 못할 게 없을 것만 같아요. 나는 자연이 내 학습장이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스승으로 삼아 내 인생문제를 풉니다. 나에게는 자연이 있기에 외롭지 않고 자연으로부터 글을 씁니다. 이것은 다 내 어린 시절에 자연에서 터득한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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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