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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여행 큰 행복
글 차영섭
구름도 아닌 것이 안개도 아닌 것이 희멀겋게 하늘을 가려
해마저 숨어버린 날씨가 연 3일째다.
점심을 먹는데 불현듯 용문까지 전동차가 달린다는 생각이 떠올라
옛 추억의 길인지라 마음이 끌려서 님과 함께 소풍가기로 했다.
하남에서 덕소 가는 버스를 타고 운전수에게 팔당역 가는 길을 물어
팔당대교를 지나자 마자 내렸다. 차에서 내리니 바람은 한창 차갑고
돌아가는 길이 마땅치 않아 어떤 아줌마에게 물으니 역전 앞에서 저리
하남 가는 차도 있다 한다. 걱정을 덜고 도로가로 걸어서 역으로 가는데
예봉산 단풍이 어찌나 곱던지 님은 나의 팔짱을 끼고 감탄사를 토한다.
참 나오기를 잘 했다고 마음 먹으며 신바람을 쐬면서 역사로 들어서니
생각보다 잘 지은 건물이 자신있게 우릴 맞이했다. 열차 시간표를 보니
30분마다 차가 있다. 플랫홈에 서서 둘레를 구경하며 기다리니, 기다리던
용문-용산행이란 용씨 집안 차가 말끔히 새옷으로 갈아입고 젊잖게
내 앞에 선다. 조금 지나니 긴 터널인지 어둔 길을 한참이나 달린다.
마치 영혼이 까만 하늘 깊숙히 번개처럼 날아가는 것같이 잠시 이 세상을
떠난다.
이 철로는 38년 전 추억의 길이다. 젊은 장교시절 양평에서 근무할
때에 신혼의 님이 서울을 오가고 나의 이삿짐을 열차가 실어다 준 삶의 애환이
아직도 숨쉬고 있는 사랑의 길이기도 하다. 몇 개의 역을 지나 양수리역에
멈춘다. 한창 사진 촬영에 열중하던 그런 시절이 있어서 양수리는 물안개라던지
겨울철 강물에 얼어붙은 시든 연꽃을 찍으러 자주 왔고 단골로 다니던 추어탕집도
있어 좋아했고 북한강을 끼고 도는 드라이브도 일미다. 추억을 되새기고 있는 나를
실은 차는 다시 양평역에 정지한다. 엊그제 같은 그 시절에 팔당댐이 물길을 막았을
즈음 어찌나 비가 많이 왔던지 양평이 모조리 물바다가 되었다.
내가 살던 셋집도 산 중턱 높은 곳에 있었지만 금새 물이 마당까지 올라와 내 생일날
닭고기를 먹다가 물야물야 윗산으로 피난 가 내려다 보니 저 아래는 지붕 위에 사람들이
있어 구조활동을 하고 있었다. 하룻밤을 이웃에서 자고 집에 가보니 다락방까지 물이
찼었다.
30여 분이 지났을까 차는 종착역 용문에 도착했다.
오다 보니 역전마다 많은 승용차가 주차하고 있는 광경이 눈이 띄었고 아마도
이런 시골에서도 차를 세워두고 전동차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용문을 포함하여 내가 오던 그 길옆으로 도로가 있고 그 도로를 따라 행군을 하며 밤을 새던
전우 생각도 났다. 용문에 내리니 역시 날씨는 스산하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용문사까지 가보자 하고 좀더 걸으니 버스 터미널이 나온다. 막
용문사로 출발하는 버스를 손들어 타고 환승을 하니 얼마나 편리한지 모르겠다. 교통비도
저렴하게 용문사까지 왔다.
그러고 보니 4년만에 다시 찾은 용문사, 그땐 님과 둘이서 용문산 등산을 할 때였다.
용악산이란 생각이 날 정도로 힘들었던 난코스였다.
노란 눈이 내리나! 하얀 눈처럼. 은행나무가 쓸쓸한 바람에 걸치고 있던 옷을 훌훌
벗어버린다. 저 알몸으로 한 겨울을 수양하려나 보다. 둘레길로 올라 둘이서 걷는 기분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진을 연신 찍으며 추억을 담는다. 눈으로도 그림을 그리고
상상으로도 마음에 하얀 화선지 위에 그림을 그리며 우린 오늘을 즐긴다. 옛 추억마저
들춰내어 내 그림 위에 덧붙인다. 내 마음에 그림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옆에
있는 님의 가슴에 그려준 그림은 더 오래 보존되리라.
가슴마다에 한 폭의 그림. 때론 붓으로, 때론 스켓치로, 때론 물감으로 그린다.
날씨가 흐리다고 집에 있었더라면 오늘 하루도 보람없이 지나가리라 생각하니
틈만 나면 길고도 짧은 여행을 하여 행복을 창출하는 삶을 가져야겠다.
내 마음에 그려놓은 그림에서는 소리가 나고 향기도 맡는다. 낙엽이 구르는 소리,
풍경이 바람에 몸 흔드는 소리, 단풍이 물드는 웃음소리, 온갖 소리가 사라지지 아니하고
녹음되어 재생된다.
저녁 식사를 해장국으로 들면서 지평막걸리를 걸쳤다. 군 생활할 때 마시던 추억의 술이기에.
어둠이 깃들고 우린 돌아오는 열차에 올라 탔다. 차 안에서 밖을 보니 별들이 땅에
내려왔는지 듬성듬성 어둠 속에 별빛이 비춘다. 하늘도 땅에 내려왔는지 온세상이 까맣다.
승객은 드물고 내 앞 창에 그려진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여행을 갈무리한다. 오늘 하루는
참 행복했다고 님은 말한다.
나도 덩달아 행복했다고 느낀다. 앞으로 시간을 내어 자주 오늘 같은 여행을 하리라 다짐해
본다.
우리가 진실로 삶의 구조를 깊이 이해한다면 다양한 창조를 통해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밖에는 달리할 일이 없다고 본다. 물질은 인생을
체험하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며 행복은 물질에서 보다 정신에서 대부분
얻어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물질적인 만족은 한계가 있으나 정신적인
만족에는 경쟁도 없고 다같이 공유하더라도 부족함이 없다.
참다운 행복은 일상 생활 속에서 발견해내어 느낄 수 있는 섬세한 감각이다.
작은 일에서 큰 행복을 누리는 지혜를 지녀야 한다. 오늘같이 힘이 있을 때
시간을 내어 즐기는 여행을 함에 만족한다. 행복은 이렇게 일상에서 만드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이런 행복의 발견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 생각
된다. 행복은 창조하는 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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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땅의 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