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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를 찾아서
글 차영섭
2011년도 하반기 문화유적지 답사는 경남 합천에 있는 해인사다.
해인사는 우리나라 삼보 사찰의 하나로 법보(法寶) 사찰이며, 통도사를 불보(佛寶) 사찰, 송광사를
승보(僧寶) 사찰이라 부른다.
이 번 답사는 마치 세계문화 축전 행사로 팔만대장경 전시가 천년 만에 이루어져 기대가 부풀었다.
경기 하남시에서 경남 합천 해인사까지는 장장 5시간 정도를 가야 하니 우리 문화원생 일행은
하늘이 아직도 잠을 자는 어둠 속에서 버스 2대로 출발했다. 잠시 후 김밥과 떡, 과일 등 푸짐한
음식이 제공되고 화기애애한 가운데 문화원장님의 인사 말씀을 들으며 달리고 달렸다.
얼마쯤 가고 있는데 시나브로 하늘도 눈을 뜨기 시작하고 지나는 개울마다 물안개를 내뿜는다.
가을이 한참 무르익어 산에도 들에도 노란 물감 일색이다. 여름에는 길고 긴 장마가 이어지더니 다행이 가을부터 온순한 일기를 주시어 금년 농사도 풍년이로다!
황금 벌판, 이것이 천국이 아니고 무엇이더냐. 드문드문 벼를 벤 논도 있고 아직 콩떡 같은 논도 있다. 산자락 마을에서 굴뚝 연기가 예술처럼 피어오르는 걸 보니 아낙네들이 아침 밥을 짓나 보다. 차는 굴과 굴을 뚫고 달린다. 손가락에 반지를 끼듯이 달리는 터널 속은 전등불이 반지에 보석처럼 빛난다. 문경새재를 지나가는데 도로가 어찌나 높던지 재가 산봉우리마다 열려 있어 옛 재가 아니더라. 나 어릴 적엔 이보다도 훨씬 작은 고개도 넘지 못해 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려서 차를 밀곤 했다.
목탄 버스라 할까. 나무로 물을 데워서 그 증기의 힘으로 달리는 버스다.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한 번 느끼며 버스는 남으로 남으로 달린다. 차는 어느덧 가야산 백운리에 이르고 단풍은 한층 제 멋을 부리고 있다. 치맛자락을 휘어 잡고 그네를 타듯 돌고 도는 단풍길이 호습다. 길가엔 차와 커피 집, 식당, 감나무에 노란 감이 즐비하다.
5시간 30분만에 해인사에 도착했다. 해인사 문화 해설사 이병생 선생님의 해설로 흥미진진하게
설명을 듣는다. 성철 스님의 사리탑은 연꽃 받침 위에 진리를 뜻하는 둥근 원의 모양으로 조각했다. 넓은 터에 사리탑이 마치 우주에 영혼이 도는 것 같다. 돌아가신 스님의 비석을 모아둔 碑林,
넋을 기리는 3층 길상탑, 원경 왕사비, 갖은 전설을 품고 있는 연못을 지나 일주문에 이른다.
歷千劫而不古(역천겁이불고), 亘萬歲而長今(긍만세이장금) 즉, 천 겁을 지나도 어제가 아니고,
만 세에 이어져도 항상 오늘이다라는 일주문의 시구가 잊혀지지 아니한다.
본래 해인사(海印寺)란 말은 화엄경에 나오는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따 온 말로 석가모니가 화엄경을 설할 때에 들어간 선정(禪定)으로 고요한 해면(海面)이 만상(萬象)을 비추듯, 번뇌를 없애고 우주의 모든 것을 깨닫는 경지란 뜻이다.
해인사 일주문으로부터 팔만대장경이 보관되고 있는 법보전(法寶殿)까지 108계단이다. 일주문 앞에 설치된 원표(元標)는 왕이 이곳에 거처하면서 지주들에게 땅을 분배할 때 쓴 기점이고 절 입구를 조금 지나다 보면 고사목이 있는데 이는 해인사를 창건할 때 심은 기념식수로서 1,200살 어르신이시다. 죽어서도 70년을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조금 더 오르면 작은 바윗돌이 있는데 이는 해인사가 7번 화재가 발생할 정도로 불이 잦아 이 바위에 소금을 저장하여 액운을 물리쳤다는 곳이다. 해인총림문(海印叢林門)은 禪院, 講院, 律院을 모두 갖춘 절에 이르는 문을 말한다. 이 외에도 우리나라에 송광사 曹溪叢林, 수덕사 德崇叢林, 백양사 古佛叢林, 통도사 영축총림(靈鷲叢林)이 있다. 해인사에만 유일하게 국사단(局司壇)이 있는데 이는 절에 어려운일이 있을 때 기도하는 곳이다. 국사단을 거쳐 해탈문이 있는데 계단이 33개로 부처까지 33川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다. 이어서 범종각, 구광루, 대적광전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大寂光殿은 석가모니 부처를 모시는 절에 비하여 비로자나 부처를 모시는 절에 부치는 이름이다.
마지막으로 드디어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법보전(法寶殿)에 이른다. 108계단의 끝이다.
법보전은 총 365평의 대지에 집 기둥 108개로 지어졌으며 거미줄이나 새들이 들어오지 않는다. 통풍이 잘 되고 바닥은 깊이 땅을 파고 숯, 찰흙, 모래, 소금, 횟가루를 뿌렸다. 비가 많이 와 습기가 차면 바닥이 습기를 빨아들이며 반대로 가뭄이 들 때는 바닥에 숨어 있던 습기가 올라와 습도 조절을 자동적으로 해 주게 되었다. 실제로 대장경을 장기 보존하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습도라 할 수 있다. 습도가 너무 높으면 판이 썩어 들어갈 위험이 있고 너무 낮으면 갈라질 우려가 있다. 1979년 문화재관리국이 공기조화냉동공학회에 의뢰하여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경판전의 습도조건은 연중 50～70%로 경판을 보관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유지하고 있다. 경판에 옻칠을 한 것도 장기간 보관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일반적으로 글자를 새기고 교정 작업을 마친 목각판은 표면에 먹물을 칠하거나 콩의 전즙과 송연으로 처리한 뒤 판가에 보관하는 것이 보통인데 팔만대장경의 경우 특별히 옻칠을 하였다. 목각판에 옻칠한 것은 세계적으로 팔만대장경이 유일하다.
해운 최치원 선생이 이곳에 초가집을 짓고 살았다. 최치원 선생이 작지를 꽂아 놓은 것이 자랐다는 500년 된 전나무가 해인사를 늠름하게 지키고 있다.
이곳엔 천 년 만에 세계문화행사로 팔만대장경이 전시되고 있다.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하고 8만 4천 번뇌에 해당하는 8만 4천 법문을 실었다고 하여 8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이것을 만들게 된 동기는 현종 때 의천이 만든 초조대장경이 몽고의 침략으로 불타 없어지자 다시 대장경을 만들었으며, 그래서 재조대장경이라고도 한다. 몽고군의 침입을 불교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하는 뜻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장도감이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하여 새긴 것이다.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과 속장경(續藏經)이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된 뒤 1236년(고종 23) 당시의 수도였던 강화에서 시작하여 1251년 9월에 완성되었다. 제주도•완도•거제도 등에서 나는 자작나무를 재료로 사용했는데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먼저 나무를 바닷물에 절인 다음 그늘에서 충분히 말려 사용했다. 이 대장경은 조선 초기까지 강화도 선원사(禪源寺)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해인사로 언제 옮겨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 1398년(태조 7)에 옮겼을 것이라는 학설이 가장 유력하며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이때 2,000명의 군인들이 호송하고, 5교양종(五敎兩宗)의 승려들이 독경(讀經)했다"라고 한다.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제작된 '초조고려대장경'이라 불리는 대장경의 조성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으나 현종 2년(1011)년부터 문종대(1046∼1083)를 거쳐 선종 4년(1087)까지 76년에 걸쳐 판각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고려에서 대장경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만주의 거란병이 서울 송악성까지 쳐들어왔을 때 왕이 남쪽으로 피난 가면서 적병을 불법의 가피력(加被力: 부처나 보살이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힘)으로 퇴치하려는 신앙으로 대장경 판각을 발원한 것이다. '팔만대장경'의 총 글자 수는 총 5,238만2,960이며 보통 '대장목록'에 수록되어 있는 장경목판을 정장이라고도 하는데 정장의 구성은 총 1,497종 6,558권으로 여기에 포함된 불교 전적들은 10권 단위로 분류되어 있다. 이 불전들은 목판의 양쪽에 새겨졌는데 목판의 총 면수는 16만2,516면이다. 목재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골고루 잘 자라는 나무를 골라 그늘에서 잘 말려 사용했다. 주로 산벗나무(70%), 동백나무(13%)를 사용하였으나 단풍나무, 박달나무, 후박나무 등 10여 종이 섞여 있다. 일반적으로 자작나무로 경판을 만들었다고 알려졌었으나 자작나무는 경판의 마구리용으로만 사용되었다. 원목을 베어 3년 동안 바닷물에 담가 놓았다가 꺼내어 소금물로 경판을 삶은 후 그늘에 말렸다. 불경을 각인한 후에 그 위에도 옻칠을 하였다. 양끝이 뒤틀리지 않게 각목을 붙이고 네 귀는 구리로 장식하였다. 소금물은 벌레나 곰팡이 서식을 막아주고 나무진이 목질 내부에 골고루 스며들도록 해 뒤틀림이나 갈라짐을 줄여준다.
이 장대한 대장경을 위하여 닥나무로 한지를 만들어 한지 한 장에 경을 22~23줄, 한 줄에 14자를 써서 거꾸로 붙여 글씨를 새기는 장면을 보고 감탄하였다.
제본할 때는 소나무를 태워서 아교와 섞어 송년묵을 사용했다.
천 년의 시간을 뛰어 넘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 자연을 이기려 하지 않고 자연에 맡김으로써 그 자체가 될 수 있었던 팔만대장경의 특성은 아래와 같다.
첫째, 국토가 유린된 상황에서 이 커다란 불사를 통해 경전을 수호한 호법적 성격을 띤다. 특히 외침을 받고 있는 절박한 상황임에도 이를 완성하여 인류 문화사에 있어 불후의 금자탑을 이룩하였다는 것은 고려인의 끈질긴 민족정신과 신앙심 높은 불심을 엿보게 한다.
둘째, 대장경을 만드는 막대한 경비를 정부가 부담하여 국민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었고 오히려 재투자적인 면이 고려되었다.
셋째, 경전의 내용은 방대하지만 과학적인 배열과 엄격한 자료 수집에 의해 작성되었다. 당시 개태사(開泰寺)의 승통(僧統)으로 있던 수기(守基) 등이 북송판(北宋板), 거란본, 초조대장경 등의 내용을 비교 검토하여 탈자, 오자, 누락된 글자 등을 바로 잡아 가장 정확한 대장경을 만들었다. 더욱이 인류 최초의 한문대장경인 송나라 관판대장경(官板大藏經)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며 현재 전해지지 않는 거란판 대장경의 내용까지 짐작하게 해준다.
넷째,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수적으로 방대한데다가 5,200만여 자에 달하는 글자가 한 결 같이 고르고 정밀한 서각(書刻) 예술품이라는 점에서도 크게 평가된다. 5,200만여 자가 얼마나 큰 숫자인지는 조선왕조 500년 내내 만들어온 '조선왕조실록'의 전체 글자 수와 맞먹는다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팔만대장경은 16년 만에 태어나 나이로 천 살이요, 쌓으면 그 키가 백두산보다 큰 3,200미터에 이른다. 늘어놓으면 그 길이가 150리(60km)다.
다섯째,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장경판이며,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우리나라의 우수한 민족문화를 엿볼 수 있는 아주 귀중한 유물이다. 현재 팔만대장경판은 국보 제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여섯째, 한 사람의 글씨마냥 똑 같은 필체로 쓰여져 있고, 썩지 않게 보관 관리를 잘 하고 있다.
팔만대장경 축전장을 비롯하여 대장경 천년관, 세계문화교류관, 지식문학관을 두루 살펴보고 견학을 모두 마쳤다.
그 동안 해인사를 여러 번 가보았으나 오늘처럼 실감나게 두루 공부한 적은 없었다.
문화원생들도 빛나는 눈동자와 귀를 모아 세우고 열정을 다하여 선조들의 조국애를 실제 느껴보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낙엽은 눈처럼 바람결에 날리고 있다.
해인사에서
오죽했으랴!
외침의 등살에,
한 많은 선조들의 슬픔이
오늘도 낙엽 되어 어리구나!
하루가 멀다 않고
어지럽히는 북방 그리고 남방의 세력여!
한민족의 정신을 모아모아
아, 피와 넋으로 대항하도다!
무기와 더불어 숭고한 팔만대장경!
키 3,200미터, 누우면 150리
5,200만여 개의 세포로 이뤄진 그대는
천 년의 세월을 넘어넘어
오늘에 빛난다
이제 우리는 이 뜻을 길이길이 기리어
앞으로 천 만년을 넘어 지키리라
이 땅을,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2011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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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숲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