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춘기를 되돌아 보며
글 차영섭
계절로 말하면 시월쯤이라고 말할까.
발가벗은 나무가 쓸쓸히 또 쓸쓸히 지난 봄을 생각하고 있다.
가지에서 움이 트고 잎이 나고 꽃도 피어 풍성한 열매를 맺었으되
아, 이제는 빼앗긴 지난 날들이 허허롭다.
허허로운 저 나무들이 지금, 화려했던 봄을 생각하누나!
그러고 보니, 엊그제 같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때 그 일이 아스라이
수평선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바야흐로 서방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로 돌아간다.
한 동네에 사는 서너 명의 여학생과 나 사이에 아마도 새싹이 돋고
있었을까. 아니면 나만 홀로 움이 트고 있었을까.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은 걸어서 시오리길. 밤이 어둑어둑해서야 수업이 파하면
가슴이 설렌다. 함께 갔으면 좋겠는데, 같이 가자고 말하고 싶어도
용기가 없고, 제네 끼리 달려서 가면 나는 언제나 홀로 오는 길이었다.
그 친구들도 유달리 내색을 하며 비껴 가곤 하는 걸 보면, 무엇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서로의 마음이 그러했으리라. 날이면 날마다 학교로
가는 길이나 되돌아 오는 길이나 반응을 살피는 게 나의 낙이라고 할거나.
춘 삼월에 나뭇가지에 물 오르는 시절이었나 보다.
그럭저럭 세월은 흐르고 나도 제2의 사춘기에 접어든 고등학교 시절.
나는 앞 동네에 살고 그 여학생은 뒷동네에 살았다. 비슷한 동녘에 서로의
학교가 있었지만 그 여학생이 오가는 등하굣길은 나에게 돌아가는 길.
나는 행여나 마주칠까, 실오라기 희망을 품고 그 학생의 길로 다니지만
가뭄에 콩 나듯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멀리서 아주 멀리서라도 모습을 보면, 내 가슴은 방아를 찧는다.
콩닥콩닥콩닥, 나 홀로 방아를 찧지만 그이는 모르는 일. 언제나 보리밥이다.
만나지 못하는 날은 하루가 그렇게 허망할 순 없다. 빈 구석을 채우러 옷을
갈아 입고 뒷마을 그녀의 집 앞을 서성거리기도 하고, 대문을 지나 뒷산에
오르기도 하며 동태를 살핀다. 그렇게 해도 만나지지 않는 인연 아닌 인연.
혹시나 그녀가 못 볼까 누나보고 빨간 셔츠를 사달라 하기도 했다.
이름도 몰라 성도 몰라, 오로지 안경을 낀 그 모습 밖엔.
그렇게 한 마디 말도 없이 육십여 년이 흘렀다.
이제 나는 늦가을, 그녀도 같은 가을. 고향에 돌아와 보니 옛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어졌다. 논바닥에 길이 나고 집들이 들어서고 흐르던
추억의 개울도 복개가 되어 도무지 알 수 없는 고향이로다.
물어 물어 옛 모습을 찾아냈고, 이제는 저기 저 집 근처가 그녀의 집터란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어 행복하다. 내가 서성거리던 추억의 내 발자국
냄새가 난다. 시간을 내어 그 길을 걸어보고 싶다. 나도 그 집도 옛
모습은 아니지만 흉내라도 내보고 싶다.
아름다운 추억은 나를 육십 년이나 젊게 한다. 한낱 짝사랑이었지만 실제
사랑보다도 찐한 사랑, 이별도 없는 나의 보람이었으니,
|
시험 합격 후의 기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