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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피아골 여름 나들이 / 차영섭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여름 한 날을 잡아 피아골 산행을 간다.
왠지 피아골이란 이름만 들어도 이상한 기분이 든다. 20대에 노고단을 가면서
저기 저 산 아래 골짜기가 피아골인데, 그 속에 들어가면 낮이 밤처럼 어두워서
방향을 찾을 수가 없다는 말을 들었고, 역사를 통해서 끔직한 아픔을 배웠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탄 버스는 광주를 출발하여 신바람 노래바람과 함께 빛처럼 빨리
40년 전의 세상으로 들어간다. 40년이 얼마 안되는 것 같지만 시대의 변천으로 보면 까마득해서 400년쯤 긴 세월의 흐름이리라. 채 3시간도 안되어 나는
40년의 긴 시간 속으로 들어온다. 지금 세상을 모두 잊고 어린 세상을 더듬어
보는 민족의 아픔과 오늘의 자랑을 함께 느낀다.
달걀 속 같은 꿈의 세상에 발을 들여 놓자 역시 그곳은 하늘에 새카맣게
구름이 덮히고 빗방울이 내리고 있다. 딴 세상에서 걸음을 걸으며 한없이
깊숙히 과거속으로 빠져드니 난 나를 잊고 만다. 상상, 그 얼마나 감동이냐.
맨 먼저 빨치산이 떠올랐다. 한국전쟁 당시 인천 상륙작전 성공으로 미처
후퇴하지 못한 인민군 부대가 숨어 살며 온갖 살인 만행을 저질렀던 곳이다.
피아골은 그 이전 임진왜란 당시나 여순반란 사건 때도 부지기 수의 인명이
살해됐던 피의 골짜기다. 백아산 아래 외갓집이 있는데, 아주 어린 시절에
목탄 버스를 타고 인근 재까지 가서 두어 시간을 걸어 가던 곳이 생각난다.
재를 넘을 때는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려 뒤에서 밀어야 차가 올라갔다.
조그마한 개울을 따라가면 다랑논이 나오고 그 논 가운데 바위도 있었는데
거기서 마을 사람들이 처형 당해 피가 논바닥을 벌겋게 물들였다고 했다.
마을은 소나 돼지를 모조리 잡아기고 집을 전부 불살라버려 지금은 새로 지은
집이라고도 했으니 그 원조가 다 빨치산들이다. 그런 자행이 바로 여기서 빚어졌으리라 추측이 간다.
피아골이란 이름은 피를 재배하여 끼니를 떼우던 시절에 붙여졌다 한다.
구례군 토지면 연곡천을 끼고 도는 곳이다. 연곡사를 지나 직전마을 거쳐
피아골 마을이 있다. 노고단으로 가는 길목이다. 가다 보면 삼홍소三紅沼란
곳이 있는데, 단풍 붉고, 계곡물 붉고, 사람 얼굴까지 붉어진다 한다.
불안과 공포의 시대가 지나고, 이렇게 평화와 자유를 누리는 시대에 산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것이며, 이 행복을 피땀 흘려 지켜야 한다는 새로운 의지가
솟구쳤다. 산행을 마치고 차는 피아골을 빠져나와 다시 현생의 세상을 본다.
2년 여에 걸쳐 지리산에 참 자주 갔다. 노고단- 반야봉- 천왕봉에 이르는 능선을 두고 수많은 계곡이 있지만,
북으로는 경남 함양 마천면에 있는 백무동 계곡이, 전북 남원 산내면에 있는
뱀사골 계곡이 흐른다. 남으로는 전남 구례 토지면에 있는 피아골이, 경남
하동 화개천 계곡이, 경남 하동 시천면에 있는 거림 계곡이 흐른다.
봄 여름 가을에 두루두루 산천을 감상했다. 지리산 계곡은 깊고 바위가 많다.
어디에 저런 물이 있다가 흐르는지 신비스럽다. 금수강산, 아름다운 우리 민족을
우리의 힘으로 지켜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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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지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