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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시인, 깨어 있는 시인 - 이길원 시인(2) 과김순진작가와의 만남
김순진 :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선생님의 시론을 듣고 싶습니다. 시는 무엇인가요. 또 어떻게 써야 하나요?
이길원 : 중국을 대표하는 시인 중 한 사람인 사마천은 시를 쓴 후 제일 먼저 자신의 하인에게 읽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문맹인 하인에게 느낌이 어떠냐 묻고, 조언을 받아 다시 고쳐 썼다고 하네요. 사마천은 “네게도 느낌이 없고 무슨 말인지 모른다면 그 누가 내 의도를 이해하겠느냐.”고 했답니다. 이 이야기는 시를 되도록 쉬운 말로 쓰라는 말과 같습니다. 시인 개개인의 독서량이나 삶에 대한 관조적 자세, 인생에 대한 철학에 따라 시의 무게가 달라지는 것이지요. 이럴때, 우리는 한 시인의 시 철학에 관하여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김순진 : 요즘 무수히 많은 문예지와 출판사에서 검증되지 않고 마구 쏟아져 나오는 시인들과 시집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그리고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대부분 <그립다. 사랑한다. 고독하다. 외롭다.>라는 감정 표현이 주를 이루는 시를 자주 보게 됩니다. 일기를 쓰듯 외롭다고 그립다고 서술한 시를 자주 대하게 되지요. 그럴 때 정말 식상함을 느낍니다. 저는 시를 쓸 때 비교적 감정 표현을 자제하는 편입니다. 확실히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으면 시를 쓰지도 않습니다
김순진 : 그럼 시는 어떻게 써야 하나요?
시를 공부하는 사람은 시를 써 놓은 후 <반드시 내가 쓴 글이 어법에 맞았는가> 보아야 합니다. 쓰고자 하는 이야기와 의미를 되도록 쉽고 아름다운 말로 표현했나 보아야 하는 것이지요. 어법에 맞고 시적 논리에도 맞아야 좋은 시, 시다운 시가 되는 법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김순진 : 선생님! 너무 어법에 맞게 쓰려 애쓰다보면 감정에 소홀할 수도 있잖아요?
시는 아주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자기 감정을 절재하면서 써야 합니다. 마치 남의 말을 하듯 담담하게 써야 독자가 공감합니다
김순진 : 그럼 시를 쓰기 전에 어떤 훈련을 해야 할까요?
이길원 : 시를 쓰려는 사람은 우선 세 가지를 많이 해야 합니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그리고 많이 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흔히 ‘시 쓰기의 삼다(三多 : 多讀 多書 多思)’라는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많이 읽는 거야 시인이 아니더라도 많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 남의 시를 읽을 때는, 첫째,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찾아 무엇을 어떻게 말해 놓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둘째, 남의 시에서 세련된 표현을 곰곰이 새기면서 익숙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셋째, 만일 내가 쓴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 바꾸어 생각해 보세요. 넷째, 내가 말할 바를 찾아서 그와 비슷한 어법으로 만들어 보세요. 그러면 ‘모방이 아니냐’ 하고 말할 겁니다. 그러나 화가가 그림 공부를 할 때 잘 그려진 그림을 모델로 놓고 그대로 그려보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습니까? 시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도 그의 『시학』에서 ‘문학은 모방이다.’라고 했습니다. 시를 공부할 때도 모방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사실 어떤 시인은 남의 시를 읽고 있다가 그 시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을 때 시가 잘 써진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를 지어 보려는 사람은 남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고는 시를 쓸 수가 없어요. 시를 읽어야 그런 세계, 그런 어법, 그런 이미지를 만들 수 있지 않나요? 그리곤 ‘나도 그처럼 감동적인 시를 멋지게 써 보아야지’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우선 많이 읽으세요. 그리고 많이 생각하세요.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만의 독특한 시 세계가 형성될 것입니다.
김순진 : 선생님 그럼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이길원 : 사실 시를 읽고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시인이 될 가능성과 소질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것과 시인과는 다릅니다. 19세기말 영국의 시인이던 워즈워드는 <시는 감정의 자연적인 발로>라고 했지요. 사실 그 무렵의 시는 그랬습니다. 김소월의 시가 그랬고 19세기 낭만파 시인들의 시가 대부분 그지요. 타는 듯한 노을을 보고 <아! 노을!> 하고 느낌만을 표현해도 시라 했습니다. 시인 중 아직 그런 것도 시로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도 가끔 내게 어떤 자연을 보고 즉흥시를 읊어 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치 가수가 흥이 나면 노래하듯 시를 읊어 보라는 것이지요. 조선시대 자연이나 읊조리며 감탄하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 시대엔 사정이 좀 다릅니다. 현대의 시인은 자신의 사상을 <시를 위해 재편성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즉 현대시란 그냥 감정이나 느낌을 쓰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이나 느낌을 <지성>을 빌려 표현하고 구성하여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흔히 어떤 시를 평할 때 <언어는 거칠지만 내용은 훌륭한 시>라는 평자의 말을 읽을 때가 있습니다. 이 또한 모순입니다. 언어의 진수를 마스터하지 못한 시인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시세계가 아무리 깊고, 인생 체험이 아무리 많고, 슬픔이 아무리 깊어도 그것을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새롭게 구성하여 시로 승화할 수 있어야 진정한 시를 쓰는 시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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