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 김동명
내 마음은 호수(湖水)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 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라.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오리다.
달 - 김동명
달은 黃昏과 함께
언제까지나 믿어도 좋을 나의 親友다.
이들 밖에 실로 내 집을 찾어 주는이는 아무도 없다.
달은 저의 가난한 親舊를 위하야
白金의 毛氈을 가져다가
나의 뜰에 깔아 준다.
나는 帝王 같이 그 우를 거닐며
나의 성대한 아침을 꿈 꾼다.
바다 - 김동명
내몸이 다시 젊어지기는 다만
그의 華奢한 옷자락이
나의 무릎 밑에 감길때.
이윽고 그의 우람한 두팔을
나의 허리에 느낄 때면
나는 나의 뼈가 힌 조개 같이
그의 품속에서 반짝이는 幻覺에 醉한다.
나의 가슴을 조그마한 港灣에 비길수 있다면
구비 구비 디리 닿은 물결은
異國의 꿈을 실고 오는 나의 나그네,
나의 마음은 네의 품속에서 海草 같이 일렁거린다.
생각 - 김동명
내 둥주리를 떠난
새 한마리
또 어데로 가는고
이 새벽에
하늘까에 외로운 그림자
내 마음을 이끄러
永遠에 매다.
이윽고 돌아오는 새
그 드리운 쭉지는
낯 익은 바다의
飛泡에 젖고
또 보이지 않는 하늘의
향기를 품기다.
내 또 부질 없이
그 발목을 더듬노니.
수선화(水仙花) - 김동명
그대는 차디찬 의지의 날개로
끝없는 고독의 우를 날르는
애달픈 마음.
또한 그리고 그리다가 죽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 또 다시 죽는
가여운 넋은 아닐까.
부칠곳 없는 정열을
가슴 깊이 감초이고
찬바람에 빙그레 웃는 寂幕한 얼굴이여.
그대는 신의 創作集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不滅의 小曲.
또한 나의 적은 愛人이니
아아 내 사랑 水仙花야
나도 그대를 따라 저 눈길을 걸으리.
우리말 - 김동명
네게는 불멸의 향기가 있다.
네게는 황금의 음률이 있다.
네게는 영원한 생각의 감초인 보금자리가 있다.
네게는 이제 혜성같이 나타날 보이지 않는 영광이 있다.
너는 등산같이 그윽하다.
너는 태양같이 뛰논다.
너는 미풍같이 소곤거린다.
너는 처녀같이 꿈꾼다.
너는 우리의 신부이다.
너는 우리의 운명이다.
너는 우리의 호흡이다.
너는 우리의 전부이다.
아하, 내 사랑 내 희망아, 이 일을 어쩌리.
네 발등에 향유를 부어 주진 못할망정,
도리에 네 머리 위에 가시관을 얹다니,
가시관을 얹다니
아하, 내 사랑 내 희망아, 세상에 이럴 범이
우리는 못났구나, 기막힌 바보로구나.
그러나, 그렇다고 버릴 너는 아니겠지, 설마.
아하, 내 사랑 내 희망아, 내 귀에 네 입술을 대어 다오.
그리고, 다짐해 다오, 다짐해 다오.
파초(芭蕉) - 김동명
조국을 언제 떠났노,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
남국을 향한 불타는 향수,
너의 넋은 수녀보다도 더욱 외롭구나.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열의 여인,
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등에 붓는다.
이제 밤이 차다,
나는 또 너를 내 머리맡에 있게 하마.
나는 즐겨 너를 위해 종이 되리니,
너의 그 드리운 치맛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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